평화, 나를 되찾아 다시 만나는 장소
- 김현수 에우제니아
2박 3일에 걸친 평화의 문화에 다가서기 위한 프로그램은 진행팀의 안내에 따라 다양한 나눔, 게임, 그룹 활동 등으로 이루어 졌는데, 모두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고, 다름을 인정하며 존중하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워크숍 끝에는 ‘모든 사람은 선하고,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등 평화를 위한 생각 하나를 살아내는 방법은 무엇인지, 또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평화의 문화에 다가서기 위한 제안이나 실천은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는 힘을 일으켜 주었다.
우리가 ‘폭력’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 만큼 ‘비폭력’에서 떠올릴 수 있는 단어들도 많았는데, 폭력에서 비폭력으로 상황을 전환할 수 있는 선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지, 우리를 방해하고, 막아서는 힘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여러 가지 도구들을 통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나에게는 평화 훈련에서 말하는 ‘핵심 자아’로 돌아가라는 초대가 ‘참된 자아’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핵심 자아는 창조적이고, 열려 있으며, 공감하며 살아 있고, 호기심 있으며 돌볼 수 있는 힘을 지닌 본연의 모습으로, 핵심 자아에서 멀어질수록 선한 힘에서도 멀어지듯, ‘참된 자아’는 고유한 아름다움과 힘으로 살아가기를 주저하지 않고, 갈등의 상황에서 반대의 힘을 피하거나 맞설 수 있으며, 타인 역시 같은 능력을 지녔음을 믿어주는 여유를 되찾는다.
평화 훈련에서 ‘놀이’라 부르는 시간에는 게임을 통해 함께 어울리고, 주변과 공간을 둘러보며 현재의 순간으로 되돌아오는 훈련을 했는데, 자기를 표현하는 놀라운 즐거움을 새롭게 느꼈다고나 할까?
아직도 기억에 남는 놀이 중에 ‘동물 안마’가 있는데, 샘물이 퐁퐁 솟는 시냇가가 연상되는 음악과 함께, 2명이 짝을 지어 안마를 받는 사람은 눈은 감은 채 동물이 안마를 한다는 상상을 하고, 안마를 해 주는 사람은 두 팔을 이용해, 나무를 타는 나무 늘보인양, 혹은 한 팔이 코끼리의 코인양, 두 주먹이 고양이의 앞발인 양 상상과 힘을 통해 안마를 하는 것이다. 이때 잠깐 스쳐간 상상과 함께 소감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열대 우림의 숲은 정글처럼 깊어져 햇빛을 나무 위로 모은 거대한 동굴을 지나는 듯 모험의 장소가 되었다. 움직임이 거의 없어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아 오랜 시간 생존에 성공한 동물인 나무 늘보는 길쭉이 높게 뻗은 나뭇 가지 위에 앉아 나무통을 끌어 안은 채 쉬고 있었지만 나뭇잎 색을 닮은 녹조로 덮여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잠깐 나무가 되어 뿌리를 내렸고, 키가 크고 늠름히 뻗은 나뭇 가지들에는 둥근 잎이 가득 달려 나무 늘보가 타고 노는 집이 되었고, 나무 늘보는 긴 팔로 천천히 기어와 나를 감쌌다. 길다란 팔이 천천히, 번갈아 가며 힘을 주어 위로 오르는 동안, 느린 움직임을 느꼈다.
나는 다시 사람이 되어 석양이 지는 초원의 바윗돌에 앉아 있었는데, 등 뒤로 부드러운 촉감의 무언가가 등을 톡톡톡 두드리는 것이 느껴져 뒤돌아 보니, 작은 은빛 코끼리가 서 있었다. 사람의 손과 언어로 친다면 인사와 악수랄까... 여러 차례 코를 이용해 등을 치는 느낌은 너무 밝거나 어둡지도 않은 석양 빛처럼, 무겁거나 너무 가볍지 않은 대자연의 숨소리처럼 느껴졌다. 내가 여기 있고, 너의 곁으로 왔다,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있다는 대자연의 알림장 같은 숨소리는 장엄하기보다 부드러웠고, 애쓰지 않아도 알아차릴 만큼 선명했다.
나는 다시 한적한 공원으로 이동하여 스코틀랜드 회색 고양이가 조금 멀리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걸 지켜보았다. 흰색과 회색 줄무늬가 섞였고, 몸을 세우고 앉아 세모난 귀의 실루엣이 귀엽게 보이는 고양이였다. 잔디밭에 엎드려 잠시 잠들었을 때... 등 위로 사뿐이 걸어다니는 느낌에 일어나 보니 스코틀랜드 고양이였다. 생각보단 무거웠고, 조그만 발바닥이 꾸욱꾹 눌러주며 가벼운 생명체가 등 위에서 노니는 느낌은 네가 생명이듯, 나도 생명이라는 듯 바람은 불고, 먼 옛날 나무 그늘 아래서의 휴식이 이어져 마음 속에 빛이 가득히 차 오르는 어린 시절의 행복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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